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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너는 잠이 든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너는 새로운 세계의 일부가 되어 있다.'
하고 이야기가 끝나는데. 나는 되려 앞 장에서 배낭을 짊어 지고 맨션을 나선 호시노 상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이미 15살의 시기를 지났고, 같은 20대인 호시노 상을 더 가깝게 느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인생의 만물이 메타포 라던 오시마 상의 말처럼 이 책은 온통 메타포로 가득하다.
남자와 여자는 본래 하나였다가 반으로 나뉘어져서, 나머지 반을 만나면 그것을 천생연분 이라고 한다는 어떤 신화와
유명한 오이디푸스 신화가 이야기 전체에 녹아 있으면서
베토벤과 슈베르트가 나오고, 프린스와 라디오 헤드가 나온다.
고양이 상과 돌 상도 있다. 커널 샌더스, 아르바이트로 매춘을 하는 철학과 학생과 입구를 지키는 두 명의 병사와
사에키 상. 15세의 소녀이자 그림자가 반 정도 밖에 없는 현실의 그녀가 있다.
아, 잠깐 잊고 있었는데
해야만 하기에 고양이의 영혼을 모아 피리를 만드는 조니 워커 상과 그를 따르는 개 상도 있었다. (밤에 이 부분 읽다가 너무 불편해서 이 책 그대로 중단할 뻔 했다.)
그리고 숲과 바다가 있다.
이름 자체로 부조리를 대변하는 카프카도 있다.
모두 기억하고 싶어서 하나씩 나열을 하다보면, 끝이 없다. 사쿠라와 나카타 상을 빼먹었네.
아무튼 이게 '해변의 카프카' 다.
상상력이 없는 사람과는 말이 통하지가 않는다.
사에키 상이 어떻게 입구의 문을 열었는지에 대한 연결이 부족하지만,
아니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을 일일이 말하자면 또 끝이 없을 것 같아.
그런데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고, 끝까지 가보면 알 수 있다는 것.
오이디푸스 신화가 비극을 벗어나려 했지만 결국 피할 수 없는 비극의 굴레. 라는 다소 운명론적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해변의 카프카> 는 그 저주 자체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면 더 이상 비극이 아니다. 라는 신박한 결론을 제시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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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성이라는 것은 자립적인 개념일세. 그것은 논리나 모럴이나 의미성과는 다르게 구성된 것일세. 어디까지나 역할로서의 기능이 집약된 것이지. 역할로서 필연이 아닌 것은 거기에 존재해서는 안 되지만, 반면 역할로서 필연인 것은 거기에 있어야 하네. 그것이 바로 연극의 대본을 만드는 방법, 좀더 유식한 말로는 희곡작법이라고 하지. 논리나 도덕이나 의미는 그것 자체가 아니라 관련성 속에서 생겨나네." - 하권,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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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랑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결여된 일부를 찾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다소의 차이는 있을망정 언제나 애절한 마음이 되는거야. 아주 먼 옛날에 잃어버린 그리운 방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거지. 당연한 일이야." = 하권,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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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그들에 대해 될 수 있는 대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고, 착각이라는 건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면 할수록 더 크게 부풀어 올라 더욱 확실한 형태를 갖기 마련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것은 착각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 하권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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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옳은 일이든 옳지 않은 일이든, 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런 행동을 함으로써 또 다른 무엇인가가 훼손되었을지도 모릅니다. - 하권,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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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여러 가지 소중한 것을 계속 잃고 있어." 전화벨이 그친 다음에 그는 말한다. "소중한 기회와 가능성, 돌이킬 수 없는 감정. 그것이 살아가는 하나의 의미지.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는, 아마 머릿속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을 기억으로 남겨두기 위한 작은 방이 있어. 아마 이 도서관의 서가 같은 방일 거야. 그리고 우리는 자기 마음의 정확한 현주소를 알기 위해, 그 방을 위한 검색 카드를 계속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지. 청소를 하거나 공기를 바꿔 넣거나, 꽃의 물을 바꿔주거나 하는 일도 해야 하고. 바꿔 말하면, 넌 영원히 너 자신의 도서관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거야." - 하권, p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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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에서는 페이지를 따로 기록하지 않고, 필요한 부분들만 써놓았다.
상식의 틀 안에 들어앉지 않는 자유로운 생명력 / 페이지 사이의 세계 / 나쓰메 소세키 / 상실과 누락 / 겐지 모노가타리 (11C 일본 궁중 생활을 묘사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고전)
/ 조용하고 큰 엘리베이터를 타고 천천히 땅 속 밑바닥으로 내려갈 때 같은 느낌이다. 곧 모든 불빛이 꺼지고 모든 소리가 사라져간다.
/ 이 세상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는 힘들고 고독하지만, 그 기억의 원형에서는 우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 세계의 만물은 메타포
책은 끝났지만, 프린스는 이제 직접 들을 수 없지만,
라디오 헤드는 아직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그게 위안이 된다.
'과거만 있는 사람과 현재만 있는 사람' 이라는 부제의 챕터가 있었다.
둘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고, 분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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