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대산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장강명 작가가 있어서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정말 최근의 일이다.
전직 기자답게 사회적인 소재로 소설을 썼는데, 예리하면서도 글이 흡입력 있게 읽힌다.
얼마나 빠져들었냐면, 나조차도 세연에게 설득당해서 20대 우리가 더이상 사회를 변혁시킬 수는 없어서,
사회가 시키는대로 작은 것에 목매는 현실을 인정해버렸다고 할까. 그리고 저항정신이 한껏 타올랐다.
사회 전반에 대한 불만이 가득. 잔뜩 염세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해결책은 아직 찾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표백세대 우리가 어떤 위대한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상태에선 우리가 지금 매달리고 있는 일들, 혹은 매일의 평범한 일상들이 위대하다고 최면을 거는 수밖에 없어보여.
그게 답이 아닌 건 알고 있겠지? 그러면 움직여야 돼
무뎌지지 말고,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워서 부조리에 반발하고 투쟁하는거야.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자기 자신은 바꿀 수 있다. 그러니까.
스스로와 싸워.. 스스로를 바꾸고, 자기 자신에게 위대해져.
●●●
민주 시대의 사람들이 고매한 야심을 갖지 못하는 주된 원인은 그들의 재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재산을 늘리기 위해 너무 격렬하게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얼마 되지 않는 결과를 성취하기 위해 자신들의 재능을 최대한으로 동원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시야를 급속히 제한시킬 수밖에 없고 그들의 영향력 또한 줄어든다. ―《미국의 민주주의》, A.토크빌
●●●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그런 세상에서 큰 틀의 획기적인 진보는 더 이상 없어. 그러니 우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게 없지. 누군가 밑그림을 그린 설계도를 따라 개선될 일은 많겠지만 그런 건 행동 대장들이 할 일이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
어떤 것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쉽다. 아주 작은 균열, 아주 작은 실패를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
확실히 휘영은 왜소해져 있었다. 시험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티끌만한 유·불리에 부들부들 떨면서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전형적인 고새싱의 모습을 언뜻언뜻 비쳤다.
●●●
완성된 사회라는 것은 구성원 또는 계층 간의 갈등이 완전히 사라진 사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완성된 사회는 그런 갈등과 모순이 어느 범위 이내에서 더 커지지 않는 상태로 계속 지속될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서구 국가들과 아시아의 일본, 한국은 이런 단계에 도달했다. 한국은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성공하면서 '완성된 사회'의 초입에 접어들었다.
완성된 사회에도 근본적인 불의와 부조리는 있으나, 완성된 사회는 한 가지 답을 고집하지 않음으로써 그 부조리를 피해간다.
이 시스템에서는 어떤 모순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지만, 또 어떤 모순도 혁명이 일어날 정도로는 쌓이지 못한다. 고작해야 '선거 혁명'이다.
●●●
새로운 담론을 제기할 수조차 없는 환경은 우리 세대의 가치관에도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표백 세대'의 등장이다.
이 세대에게는 실질적으로 어떤 사상도 완전히 새롭지 않으며, 사회가 부모나 교사를 통해 전달하는 지배 사상에 의문을 갖거나 다른 생각에 빠지는 것은 낭비일 뿐이다. 그런 시도는 기껏 잘돼봤자 기존 지배 사상이 얼마나 심오하고 빈틈없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효과만 낳는다.
이들에게 지배 사상은 큰 틀에서 항상 옳으며, 그 사상을 받아들이는데 개인마다 과정과 깊이가 다를 수 있으나 결론은 언제나 같다. 이들은 지배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따라서 실제 삶에서 온갖 종류의 불편함과 부당함을 겪어야 하는데도,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개인이나 작은 이익집단 단위를 넘어서지 못하게 되며, 세계는 사상적으로 완전무결한 상태가 된다.
이것이 바로 표백 과정이다. 아무도 더 나은 시스템을 떠올리지 못한다. 거대한 흰색 세계는 모든 빛을 흡수하며 무결점 상태를 유지한다.
●●●
마르크스는 노예는 자신의 노예적 존재를 지속할 수 있는 일정한 조건을 보장받는 데 비해 노동자는 계급적 지위가 점점 가라앉는 처지에 있기 대문에 어떤 면에서 노동자는 노예보다 더 비참하다고 주장했다.
표백 세대는 정신적인 면에서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들보다도 더 한심한 처지에 있다.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들은 사회주의 사회라는 '다음 단계'를 꿈꾸며,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주체로서 뚜렷한 이념과 이상을 갖고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표백 세대는 지배 이념에 맞서 그들을 묶어주거나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이념이 없으며, 그렇기에 원자화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낙원'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이상향은 있을 수 없기에, 표백 세대에 혁명과 변혁에 관한 한 아무런 희망을 품을 수 없다.
이들은 사회를 비난할 권리조차 박탈당한다. 완성된 사회에서 표백 세대의 실패는 그들 개개인의 무능력 탓으로 귀결된다.
●●●
모든 사람이 위대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세연은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의 존경을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무가치한 것처럼 얘기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잖아. 우리가 호모사피엔스라는 동물 종으로서 잘 가꿔진 숲길을 걸을 때 거부할 수 없는 작고 소소한 기쁨을 맛본다면, 그 숲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가치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어. 좋은 음악이나 그림, 음식을 즐기는 데서 오는 즐거움은 본능적인 것이고,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만들거나 만드는 기술을 갈고 닦는 데에는 왜 우리가 그걸 해야 하는지,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애써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어. 그러니 그런 일을 하면서 보내는 삶에도 가치는 있는 거야.
'인정에 대한 욕구'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패배나 사회 변혁이 없어도 적절한 수준에서 채워질 수 있을 것 같아. 실제로 평범한 사람들은 승진을 하거나 표창을 받았을 때 그런 욕구가 풀렸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어떤 업적에 대한 욕망이랄까, 자부심을 충족시키는 데에도 그 거래를 내가 성사시켰다, 저 건물을 짓는 데 내가 참여했다, 저 길을 여는 데 내가 힘을 보탰다, 저 정책이 바뀌는 데 나도 일조했다, 이런 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우리 앞의 세대라고 해서 그 사람 중 어느 누구 한 명이 자기 힘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것은 아니잖아. 그네들이 가진 자부심도 하나하나 쪼개놓고 보면 나도 가방 하나 들고 해외 출장 나가봤다, 밤새워 일해봤다, 거리에서 돌 던져봤다, 그런 일들 아닌가.
'지금 이 순간 > 책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전쟁』- 심용환 지음 (0) | 2017.06.09 |
---|---|
『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지음 (0) | 2017.06.03 |
『쇼코의 미소』 - 최은영 지음 (0) | 2017.04.12 |
『해변의 카프카』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0) | 2016.08.08 |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0) | 2016.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