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nuit d'ete _ Winslow Homer
여기는 깊은 산 속.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어딘가로 달음질쳐 숨어들고 싶을 때면 찾는 곳이었다.
내 이십대 초중반의 가치관이 오롯이 이 곳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스물에서 스물다섯까지의 생각은 빠짐없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지금은 스물여섯이다. 고작 일 년 새 나를 둘러싼 많은 것이 바뀌었다.
불과 세 달 전까지만 해도 아늑하게 느끼던 이 공간을 잘 찾지 않게 되었고
보다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세상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것이 의식적인 노력이었든 무의식적인 변화였든
어쨌든 나는 바뀌었다.
세상을 따뜻하게 해석하는 감성은 거의 사라졌다. 사랑과 우정에 거는 낭만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희망은 있다고 믿고 있다. 연민의 대상이 전보다 조금 구체화되었고,
거기엔 나 자신을 향한 연민도 포함돼 있다.
자의식 과잉을 경계한다. 내 생각의 감옥에 갇히고 싶지 않다.
책을 본다. 이상에만 현혹되지 않으려고도 한다. 글을 쓴다. 무조건 완성글을 만들기 위해 강제성을 부여했다.
음악을 듣는다. 김동률 노래는 이제 아주 가끔 듣고, 따라부르지 못할 외국 음악을 듣는다. 글을 쓸 때는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볼륨을 최대한 크게 한다. 그러면 나는 시끄러운 시장통에서도 홀로 나의 일에 집중할 수 있다.
개요를 짜려고 노력하지만 글은 쓰다보면 '툭'하고 작은 열매가 맺히는 지점이 있다. 그 순간은 우연적이라 개요가 필요없다.
한 번은 우연인 줄 알았는데 두번 세번 계속 반복된다면, 어쩌면 그게 나의 글쓰기 방식일 수도 있겠다고 흘러가듯 생각했다.
나 자신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던 걸 하나 발견했다.
생각보다 나는 지구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4월 초 시작한 글쓰기 스터디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
소리도 없이. 나는 내 끈기가 부족하다고 자책했는데, 어쩌면 나는 끈기가 부족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발레도 1년 넘게 하고 있다. 발레는 요즘의 유일한 낙이다. 전공자랑 비교하면 한없이 부족하지만 과거의 나와 비교하면 확실히 늘었다.
비교는 어제의 나하고만 해야지, 절대 네버 다른 사람과 해서는 안 된다. 비교하지 않는 건 고등학생 때부터 아니 더 어렸을 적부터 의식적으로 비교를 피해왔기에 익숙하지만, 그럼에도 아무것도 없는 내 자신이 초라해질 때면 차라리 글자를 한 자 더 보는 편이 낫다.
비교하느니 경쟁하느니 나는 내가 지는 편을 택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져도 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져야 한다면 내가 지지 뭐 그런 생각을 중학생 때 했다.
많이 웃으면 안 된다. 웃지 않는 연습을 또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매번 실패하던 웃지 않기, 혹은 웃음 줄이기
어색한 상황이면 나는 저절로 웃었다. 정적이 찾아오면 또 웃고, 힘들면 웃고, 뭐 그렇다.
나는 다른사람들도 이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이십년 넘게 살아온 기존의 나를 부정하고 바꾸는 작업이라 말처럼 쉽지 않다. 왜 웃으면 만만한 상대가 되는걸까? 웃으면 철없는 사람이 되는걸까?
나의 웃는 습성 또한 누군가 져야 한다면 내가 지지 뭐 마인드의 연장선일까? 웃는 건 지는걸까?
지다lose 해가 지다sunset
지는 게 어때서. 하지만 싸움의 기술을 늘리려고도 하고 있다.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는 연습
내가 언제 내 의견 안 낸 적 있었나? 사실 그런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대미가 되려고 하고 있다.
나는 나대지는 않았으니까. 이왕이면 적을 많이 만들어 봐야겠다.
아무튼 웃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사람들은 서로 미워하고, 웃지 않음을 카리스마로 여긴다.
면접장에서 웃으면 안 진지해보인다. 회의 때 웃으면 가벼워보인다.
내가 웃고 싶어서 웃는 게 아니고 그냥 이렇게 되는건데.
이게 나를 보호하기 위한 건가? 이때까지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해주기만 해서
거기에 부응하려고? 모르겠다.
사람은 자기다울 때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내가 작아지고 못나진다.
잡히지 않는 꿈을 좇으면 내가 초라해지고 조급해진다.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제일 어렵다.
그 사람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떡해
영원히 꿈을 이루지 못하면 어떡해
내년에도 지금 이대로면 어떡해
어떡해만 늘어간다.
답은 '걍 해'다.
깊은 산 속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기다린다.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할 수 있는 건 지금 현재에 몰입하는 것 뿐.
여름밤이라는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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