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백쪽이 되는 분량의 소설을 읽기 시작하니, 좀처럼 끝나지가 않고, 얼른 다른 책을 읽고 싶은데..
하여 어렵지 않게 넘어갈 것 같은 에세이를 찾기 시작했고, '끌림' 이었다.
저자의 다른 책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도 서점에 앉아서 간간히 읽었던 것 같은데, 제대로 앉아 읽으니
확실히 글쓰기를 배우고 쓰는 사람과 배우지 않고 그냥 쓰는 사람의 문체와 농도는 다르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에세이는 보통 많이들 쓰기 때문인데 (특히 여행에세이), 그런 점(글 연습을 많이 했을 법한)에서 난 이 책이 무척 좋았다.
그러나 후반에 다다를 수록 내 개인의 문제인지 일관된 분위기의 글을 계속 읽어서인지 몰입도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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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하면 스텝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추면 돼요.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지요.」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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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지난 가을은 어땠어요?」
「7억, 8천 백 91만, 9백 서른아홉 개의 양말 같은 낙엽들이 모두 자기 짝을 찾고 있는 것처럼 뒹굴고 뒹굴었어요.」 -p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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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감사는 박자를 맞춰 감사를 부를 것이다. -p96 이야기.스물.다음 사람을 위하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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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날아갔어. 새가 날아간 거라구.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휑하니 그냥 그 자리를 뜬 거라구.
먼지로 지은 집 따윈 까짓거 그냥 내줘도 된다고 믿었던 거야.
먼지로 지은 집일지라도 먼지밖에 없을 텐데. 어디 갔다 돌아와도 기다리는게
먼지밖에 없을 터인데 뭐 하려고 집을 지키려고 애를 쓰겠어.
연기가 되고 싶었던 거야.
자신이 연기인 줄도 모르면서 연기 흉내를 내려고 힘차게 날아올랐고
덕분에 돌아올 곳이 없어진 거야.
흩어지려고 작정했으니 그깟 되돌아오는 일이 뭐 대수였겠어.
먹이를 먹어본 지 오래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먹이를 먹겠다고 지상에 내려 몸을 쉬는 게 아니라 더 날아오르는 일만 했던 거야.
날아오르는 일은 그의 전부였고 안간힘이었고
해서는 안 될 말을 끝끝내 하지 않는 인내 같은 것이었지. 섬뜩한 비행이었어.
죽기로 작정한 것일까. 살기로 작정했다면 저리 날 수 있을까.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가 날아가는 방향을 걱정했어.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저, 간절한 비행이라니!
하지만 꼭 이유가 있어야 했을까.
이유가 있더라도 세상은 그 설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느 한순간 새는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어.
새는 떨어지면서 세상 단 하나뿐인 유혹만을 생각했어. 마지막이었으니까.
마지막인데 마지막 이후의 것을 생각하지 않을 존재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이 발작적이며 동물적인 유랑을 마치고 나서
발작적이며 동물적인 유랑과 상관없는 존재로 태어나는 것.
새는 하강하면서도 비명도 없었고 얼마 되지도 않아 뻣뻣해졌어.
그렇게 된 새 주변으로 한순간 큰 불길이 일어났다고 사람들은 수군거렸어.
내가 날아갔어. 내가 날아간 거라구.
-p101~103 이야기.스물하나.떨어지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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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갔을 때 제대로 말이 통하지 않을 때, 그럴 땐 똑같이 생긴 뭔가를 두 개 산 다음 그중 하나에 마음을 담아서 건네면 된다.
환하게 웃으면서 그러면 된다.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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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도의 말 중에는 '중요한 것은 우주를 한바퀴 도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중심을 한바퀴 도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쟝 그르니에의 <섬>에 나오는 이야기다.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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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십오 킬로미터가 되는 널따란 돌이 있어. 그 돌을 백 년마다 한 번씩 빗자루로 쓸지. 그렇게 해서 그 돌이 다 닳아 없어지면 그게 '겁'인 거야. 근데 이 생에서 옷깃이 한 번 스치는 것도 전생에 오백 '겁'의 인연이었던 사람들이나 스칠 수 있는 거거든? 그렇다면 우린 뭘까? 과연 이건 뭘까?」
(중략)
하지만 내가 하지 못한 말.
두 사람이 마음으로나마 한 집에 사는 것. 한 사람 마음에 소나기가 내리면 다른 한 사람은 자기 마음에다 그 빗물을 퍼내어 나누어 담는 것. 그렇게 두 마음이 한 집에 사는 것. 한 마음은 다른 마음에 기대고, 다른 마음은 한 마음 속에 들어가 이불이 되어 오래오래 사는 것. 내가 생각하는 한 그것이 진정 인연일 터이니 우리는 그저 아무 것도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 말. -이야기.예순하나.인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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