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Wien(2), Austria
2015. 5. 24
-성 슈테판 성당
-모짜르트 박물관
-피그뮐러 슈니첼
-빈 국립오페라 극장 발레공연
부지런히 다닐거라고 모처럼 일찍 나섰는데, 쓰고보니 그렇게 많이는 안 다녔네.. 이게 다 오페라극장 입석 대기 때문이다.
세 시간을 넘게 기다리고도 두시간이 넘는 공연 내내 서서 봐야했다. 그래도 불평하면 안 됨. 그만한 공연을 이 가격에 볼 수 있는 데에 감사해야지.
어제 컴퓨터로 사진 옮긴다고 메모리 카드를 두개다 빼놓고는 안들고 나가가지고 오늘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오페라 오늘 공연 있나 확인하고 티켓 사놓고 다시 돌아와서 메모리카드 가지고 나가려했는데, 온종일 기다려야 하는 거였어..
그래도 좋았던 거도 있다. 마침 오늘이 일요일이라 많은 가게들은 닫았지만, 성당 미사가 진행중이었다.
슈테판 성당은 들어가자마자 천장에서 내려오는 설치물들이 크게 눈에 띄었는데, 다른 성당에서는 볼 수 없던 거였다.
폰으로 사진을 찍긴 했는데 화질이 영.. 그리고 성가대랑 오케스트라가 최고... 그들을 들으려구 미사 끝까지 보고 있었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가 드러난 점도 특이한 점이었다.
리옹 생 장 성당에서 난생 처음으로 미사를 참석해 보았는데,
유럽에서의 마지막 일요일, 미사를 또 한번 참석할 수 있어서 뜻깊었다.
발레 공연을 보는 중.
1. 오케스트라 악기 악기 마다 다 귀를 기울이고 선율을 따라가고 싶은데 그러자니 발레를 놓친다. 소리에 집중하려면 눈을 감아야.
청각이냐 시각이냐.
2. 제대로 발레 공연을 본 건 처음인데, '절제' 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만한 절제된 동작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무대 아래에서 그들을 얼마나 피땀을 흘렸을지. 발레리나는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다. 나풀나풀 쫑쫑 총총총 훨훨.
나비인가?
3. 프로페셔널. 앞으로 뭘 해야할지, 내게 내려진 천직은 무엇일지, 갑자기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현실감각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나보다. 이럴때 보면 의식보다 무의식이 환경의 변화를 미리 감지하는데 훨씬 능통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비행기 승무원들을 볼 때면 정말 직업정신이 뛰어나다, 그야말로 프로페셔널 하다 는 생각을 매번하였다.
그런데 비슷한 느낌을 오늘 발레리나들과 지휘자 분에게서 받았다. 그들은 어떻게 평생을 그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되었을까.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의욕이 그의 잠재된 천재성을 끄집어 낸 걸로 보이던데, 저들도 제법 풍족한 집안에서 부모님들의 바람으로 예술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된걸까.
4.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어야해서, 예쁘게 보여야 해서, 때론 마네킹 같아서 슬프다. 예쁘기만 한 것이 사람은 아니니까.
5. 우린 늘 그들의 뒷모습밖에 보지 못한다. 지휘자. 발레나 오페라 공연에서는 배경음악이 되고 마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나는 박수쳐주고 싶다.
조선의 궁궐에서는 무희의 춤사위를 보고난 후 박수를 치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것이 법도라고. 그러나 이제 세상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박수 치지 않는 것은 공연에 만족하지 못하였음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기도 하며 우리는 만족할 때 더욱 크게 손뼉을 부딪힌다.
6. 가감없이 내가 지금부터 뭘 준비해야하는지, 목표를 구체적으로 재정비하고, 내 실제 위치를 파악하여 채울 것들을 슬슬 채워야겠다.
대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내 큰 목표는 줄곧 교환학생이었다. 그 목표가 현실이 되었고 곧 과거가 될텐데,
계속 그 자리를 비워둘 수는 없을 것이다. 목표의 부재가 자꾸 내게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싶은 날이다. 하고싶은 일만 해서는 인생이 지루하다는 걸 알았다. 억지로 해야하는 일들을 하면서 틈틈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것이 더 나를 즐겁게 만든다는 사실도. 종이책을 읽고 싶고, 끈기를 가지고 누구 말마따나 10년간 한분야에 정진하고도 싶고, 그 분야가 이왕이면 숫자보다 감각을 활용하는 분야였으면 좋겠다. 더이상 생각만 말고 구체적으로 행동을 시작해야겠다. 본격적으로 내 일에 필요한 양식의 밑천을 마련해야겠다. <리진>을 읽는데 우리나라 최초로 프랑스로 간 여자의 이야기이자 무희의 이야기. 신기하게 이래저래 겹친다. 오늘은 하루종일 음악의 날이었으니까, 내일은 미술의 날로 보내야겠다.
오스트리아는 어제와 다름없이 편안하고 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