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사진 일기

13. Kraków(3), Poland

Rachel Lee 2015. 5. 19. 07:15

2015. 5. 17

 

-크라쿠프 야트막한 산, 학교, 유대교회, 만남

-그리고 안녕

 

 

어젯밤 보드카와 맥주를 섞어서 과음한 내 친구는 힘겨운 아침을 맞이했고,

알아들을 수 없는 폴란드어가 난무하는 통에 지루함을 느낀 나는 슬쩍 빠져나와 일찍 잠을 청하여

같이 보낸지 3일만에 전세역전! 새벽 여섯시에 내가 눈을 뜨고, 오전 열시에 너가 눈을 떴다.

 

 

되려 빨리 회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질까봐 맘편히 쉬게 두고 잠깐 나갈까 했더니,

때마침 이제 괜찮아졌다고 또 같이 나가자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제 미리 계획한대로,

너의 학교를 구경갔다. 산을 산책하면서.

 

 

 

 

 

여행 중 들렀음에도, 내가 여행 중이란 사실을 잊을만큼

우리들의 관계에 충실했던 지난 3일. 귀한 대접을 너무나 마구마구 받은 것 같고,

여러모로 신세를 진 것 같아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지만,

그래서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도 진심으로 따뜻한 친절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한국을 떠나온 이래로 기존의 한국 지인들을 한번도 못 만났는데, 그래서일까

짧은 날이었는데도 너무 정을 많이 붙였나보다. 혼자 생각에 K와 P가 얼마나 고마운지.

또 다시 혼자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여행자 신분이 되기를 앞두고, 마음 한 켠이 먹먹해져 왔다.

 

설핏, 내가 무던해진 것이

지난 달들, 모든 걸 혼자서 해야하는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든건 아닐까 싶었다.

도처에 기댈 곳 없는, 오직 나만이 나를 받아줄 수 있었던 날들이.

 

생각해보면, 내 비(非)사교적인 성격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여기까지 왔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아무리 여행지에서 함께 즐거웠어도, 그것은 추억으로 남겨두고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기 마련인 것을 여러번의 경험으로 배워서,

애초에 오래 지속될 관계라는 기대는 접어둔다.

 

'잠깐 보고 말 사이'는 내가 원하는 인간관계의 상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여행지의 인연들에 조금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계속 만나지고, 다 다른 저마다의 이야기들은 들려오더라.

 

그건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야.

 

다만

잠시나마 자신을 들려주고, 나를 들어준

누군가와 함께여서 즐거울 수 있었다면.

짧았던 순간의 길이에 꼭 회의적이기만 할 필요는 없겠지.

 

 

@ 다시 만나 see you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