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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여름이라, 겨울은 겨울이라 - 김신회『아무튼, 여름』

Rachel Lee 2020. 6. 23. 00:37
아무튼, 여름
국내도서
저자 : 김신회
출판 : 제철소 20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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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엔 기록적인 폭염이 전국을 휩쓸었다.

재학생 때보다 더 자주, 꽤나 성실하게 모교 도서관을 들락거리던 시절이었다. ​뙤약볕 아래에서 정신을 놓고 헤롱헤롱 거리다 마침내 도서관 건물로 들어가면 ‘이제 난 살았다!’ 싶은 냉기가 몸을 감쌌다. ​하지만 책상에 앉고도 최소 10분은 손선풍기로, 아니면 부채질로라도 땀을 식히고 나야 책을 볼 정신이 들었다. ​더위에 제대로 혼을 빼앗겼지만, 에어컨 빵빵한 도서관이 집 나간 혼을 구해왔다.​

 

2019년 여름은 수치로만 봤을 땐 18년에 비할 바가 못 됐다.

​하지만, 당시 나는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논으로 밭으로 뛰어다녀야만 하는 <6시 내고향>을 담당하고 있었고, ​덕분에 팔다리, 목, 심지어 손등까지 새까맣게 탔다. ​그 여름의 훈장은 햇볕에 그을려 꼬질꼬질해진 손등이었다. (가을이 오자 거짓말처럼 팀을 옮기게 된다. 윽.. 제대로 당했다.^^;)

 

언제부턴가 나의 여름은 양산을 쓰는 것으로 시작된다. 또, 샌들을 신으며 시작된다.

​또, 꾸덕한 토너에서 수분기 가득 산뜻한 토너로 바꾸면서, 클렌지오일에서 클렌징워터를 쓰면서 시작된다. 모기에 물린 자리를 긁다가 시작된다.

​워머없이 레오타드만 입으면 여름이다. 발레를 시작하고부터 나는 쏟아지는 땀을 긍정하기로 했다.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이제는 땀이 나면 기분이 좋다. 원피스를 입는다. 머리를 높게 묶는다. 냉면을 먹는다. 그러면 또 밀면이 당긴다.

 

이틀 전엔, 양산을 쓰는데도 왜 여전히 더운지 알아냈다. 양산은 상반신으로 향하는 햇빛만 막아주었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 다리로 향하는 직사광선을 막진 못했어.

​나무 아래, 그늘막 아래, 건물 아래, 그늘진 구역을 찾아 요리조리 다녔다. 그늘이 너무 소중하다.​

 

 

정신승리(?!)가 몸에 밴 나는,

여름은 여름이라 좋고, 겨울은 겨울이라 좋다.

봄, 가을도 예외는 없다.

 

모든 게 있는 그대로 좋다.

 

 

p32-33

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면 세계는 그 하나보다 더 넓어진다. 그저 덜 휘청거리며 살면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지내다 불현 듯 어떤 것에 마음이 가면, 그때부터 일상에 밀도가 생긴다. 납작했던 하루가 포동포동 말랑말랑 입체감을 띤다. 초당옥수수 덕분에 여름을 향한 내 마음의 농도는 더 짙어졌다.

 

p42

겨울에는 구려도 상관없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이미 구리기 때문이다.

> 여름 좋다고 하면서 겨울을 깎아내릴 건 또 뭐람. 겨울러버들 섭섭하게 말이다!

 

p97

달걀프라이를 올린 짜파게티가 시그니처 메뉴였는데(아련).

 

p153

일본 드라마 <와카코와 술>의 주인공 와카코는 퇴근길마다 혼자 술집에 들른다. 그가 매일 다른 술집을 찾아가 요리에 어울리는 갖가지 술을 골라 마시며, 하루 동안 쌓인 피로를 날려버리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냉장고를 열게 된다.

 

p168

여름 하면 떠오르는 영화 <안경>,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