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나, 시인의 밤 - 김이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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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미친 듯이 간절했던 시기가 있었다. 엄청난 업무량에 ‘이러다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시기였고, 모진 말을 하도 들어서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것은 물론 혼자 있어도 언어폭력을 행사하던 그 사람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들려오던 시기였다. 그때 나는 살기 위해 시에 매달렸다. 인적이 드문 새벽에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떻게든 단어 하나라도 눈에 머리에 심장에 담으려 했고, 그러고나면 그나마 진정이 되어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폭력의 한 가운데에서 귀퉁이로 나를 옮겨놓을 수 있었다.
그게 2019년 늦봄부터 초가을까지의 일이니,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발생한 크고 작은 변화들로 나는 안정을 되찾았고, 그 사람과도 이제는 서로에게 꽤나 호의적이게 되었지만, 그 시절의 괴로움은 옅어졌을 뿐 사라지진 않았다. 그래서 ‘시’를 말하자면 꼭 그 시절이 떠오른다. 시가 유일한 산소 호흡기였던, 시가 있어 버틸 수 있었던 그 시절 말이다.
시를 만나서, 시의 효험을 알게 되어서 어쩌면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 시기를 겪은 후로 많은 것에 초연해졌다. 이제 살기 위해 시를 찾진 않지만, 현실의 체증을 흘려보내고 싶을 때, 재미없고 시시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자연스레 시를 기웃거리게 된다. 나의 위로이자 안정제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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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흰 종이 앞에 앉아야 했다. 쓸 수 있든 아니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단 1초만이라도 흰 종이 앞에 앉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대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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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부터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쓸 것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쓸 것들은 오히려 많아졌다. 그러나 쓸 시간이 없었고, 머릿속을 정리할 공간이 없었고, 나에게 집중할 틈이 없었다. 이제는 조용히, 고즈넉하게, 쓸쓸히, 오롯이, 동떨어져서, 가만히, 차분하게 같은 단어들을 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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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아하는 장면. 활자가 눈 앞에 영상으로 그려지는데 아름다워서 새벽에 읽다가 울었다.
전자책 대여 기간이 지나 중간에 멈춰야 했지만, 결국 이 장면이 남긴 인상때문에 나중에 다시 빌려서 마저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좁은 여기 말고 넓은 데서 만나요.”
“지금 데이트 신청한 거예요?”
“네!”
그 사람이 너무 크게 대답을 하는 바람에 둘 다 피식 웃고 말았다. 그 사람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열쇠를 쥔 손 그대로 그 사람의 손에 올렸다. 그 사람이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부드럽게 감싸쥐었다. 맞닿은 모든 부분의 세포들이 다 제각각 살아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온 신경이 마주잡은 손으로 향했다.
그날 밤 그 사람과 내가 함께 본 건 특별한 풍경은 아니었다. 맥주라도 한잔했는지 유쾌하게 웃으며 지나가는 무리들과 걷는 내내 통화를 하며 미소를 짓던 아가씨, 수줍게 팔짱을 끼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던 교복 입은 어린 연인들과 쪼르르 줄지어 부지런히 제 갈 길을 가던 길고양이 네 마리. 저 멀리 편의점의 야외 테이블에는 아이스커피를 앞에 둔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었고, 정류장에는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저마다 손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날씨와 상관없이 배달 오토바이는 거리를 활주했고,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한 무더기의 차들이 오고 가기를 반복했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무수한 어느 날의 여름밤이었으나 그 사람과 나는 열대야에 딱 맞춤한 장면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순간이라는 것도 짐작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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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문득 그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데려다주겠다며 집 앞까지 같이 오고선 정작 헤어지기 싫어 빌라 입구의 목련 밑동만 툭툭 차대던 여름밤이라든지, 내가 읽어주는 시를 가만히 듣고 있던 그 사람의 진지한 얼굴, 막 잠이 들었을 때 파르르 떨리던 그 사람의 속눈썹이라든지, 아무것도 아닌 듯 무심하게 걸었던 그 사람의 동네 골목길과 그렇게 먹고도 질리지 않던 떡볶이 같은 것들. 좁은 침대에 그 사람의 팔을 베고 가만히 누워 있다 보면 온몸에 느껴지던 묵직한 이불의 무게 같은 것들.
(중략) 그래도 만나는 동안 한 번도 싸우지 않은 건 잘한 일 같았다. 가난했던 연애였지만 가난한 사랑으로 기억되진 않았다. 헤어지고도 계절에 한 번씩은 안부 문자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위를 물어오는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기길 바랐지만, 더 솔직히는 그걸 나에게 말하지는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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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엄마의 구시렁 소리를 무시한 채 그대로 출근한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설거지 중이어서 물이 뚝둑 떨어지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 인생은 길고, 넌 아직 피지 못한 꽃이다. 주저앉지 마. 엄마가 하란 대로 하지도 말고.
그러곤 뚝, 통화가 끊겼다.
피지 못한 꽃, 이라는 말을 들은 날에도 나는 시를 쓰지 못했다. 필사 노트만 두꺼워지고 있었다. 낙선자로만 평생을 살아가면 어쩌나 싶은 마음.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 되어, 패배자가 되어, 이대로 무용한 인간의 돼버리면 어떡하나 매일 두려웠다. 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연둣빛 싹이라도 될 수 있다면, 아니 새하얀 뿌리 한 쪽 될 수 있다면.
81-82%
필사 노트는 계속 늘어났다. 혼자 지내게 되었다고 곧바로 시가 써질 리 없었다. 그러나 나는 혼자 있는 동안은 온전히 나에게 몰입할 수 있었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밤새 언어에 대해서, 시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이런 생활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으므로 하루하루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시집을 읽거나, 몽상을 하거나, 끊임없이 단어를 열거하거나, 심지어 잠을 자는 것마저도 최선을 다했다.
오늘은 그래서 그런 시를 쓰고 싶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짙은 초록색으로 변한 이팝나무 이파리에 관해. 거짓말처럼 맑았던 그날 새벽하늘을 지나갔던 검은 새 한 마리에 대해서. 아무도 울지 않았던 그 밤에 대해서. 엄마의 꽃무늬 블라우스에서 맡아지던 나른한 살냄새와 동생의 품에서 꼬무락거리는 스무 개의 손가락과 스무 개의 발가락에 대해서. 그 손과 발이 잡아당긴 생의 끈질긴 얼룩과 여름 소나기에 대해서, 그 소나기 끝에 피어오르는 흰 구름에 대해서. 그해의 열대야에 대해서, 깊고 오래된 골목길에 대해서, 그리고 그리운 사람의 그림자와 나의 눈물과 우리의 정류장과 모두의 무덤에 대해서. 서로의 체취로 속삭이던 노래와 지리멸렬한 계절에 속박되었던 오해와 피우지 못한 꽃과 기꺼운 약속과 작은 책상과 낡은 베갯잇과 차마 다하지 못한 희망과 나는 지금 여기 있다는 것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