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책장

『역사전쟁』- 심용환 지음

Rachel Lee 2017. 6. 9. 00:53
역사전쟁
국내도서
저자 : 심용환
출판 : 생각정원 201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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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에서 처음으로 도종환 의원의 역사관을 문제삼은 기사를 봤는데, 기사만으로 이해가 가지 않아서 한참을 찾아봤다.

그리고 마침 오늘자 한국일보에 실린 소설가 장정일 칼럼

권력은 왜 역사를 장악하려 하는가

http://www.hankookilbo.com/v/946964f36e2443c1b76288a7e46bf837

 

추천도서로 실린 책을 내친김에 읽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든 생각.

 

"논리도 근거도 한없이 부족한 자칭 뉴라이트들에게 반박하기 위해, 이렇게나 수고를 해야하나."

 

사실 반박할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하는데, 정확한 사실로 무장하여 조목조목. 감히 존경스러웠다.

이래서 사람은 공부를 해야한다. 느끼는 바가 많다. 따로 파일로 저장해둠. 공부를 하자 공부를.

 

 

 

유럽에서는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쟁이 주를 이룬다. 독일의 경우 '나치 청산'이라는 너무나 잘 알려진 역사적 유산을 가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데다 새로운 독일을 주도하는 세력이 기민당이건 사민당이건, 즉 보수건 진보건 나치와 무관했기 때문에 역사 청산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냉전의 고착화와 뒤이은 냉전의 해체라는 국제 환경 자체도 그들을 과거사 청산에 적극적으로 내모는 효과를 냈다. - p25

 

 

결국 유럽 각국은 학계와 시민들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과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면서 새로운 역사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과거사에 대한 사적 처단, 법적 처단이 충분히 진행되었고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또한 공민권 박탈과 사면법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냈기 때문에 과거의 문제가 현재의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 p29

 

 

  현대 프랑스는 반(反)나치 투쟁을 통해 국가적,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했다. 1964년 레지스탕스 통합을 시도하다 살해당한 장 물랭(Jean Moulin)을 추모하는 국가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진행되는데 이는 단순한 추모 행사가 아니었다. 드골 중심의 반나치 우파 세력이 주도하는 가운데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7만 5000명이나 희생당한 프랑스공산당이 합의 하에 이 행사에 참여했던 것이다. '반나치-우파의 드골주의와 좌파의 레지스탕스 투쟁'이라는 공동의 합의를 통해 좌우가 통합된 국가 정체성이 확립된 순간이다.

  한국도 해방 이후 친일파를 청산하면서 국가 정체성을 확립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미군정기 맥아더 포고령(1945)으로 친일파가 직위를 보존하고, 중간파가 주도한 민족반역자 · 부일협력자 · 전범 · 간상배에 대한 특별법(1947)이 무산되었다. 정부 수립 이후 반민특위(1948) 활동도 최종적으로 실패하면서 친일파 처단은 물거품이 되었다. 여운형이 암살되었고(1947) 좌익 계열이 몰락했다. 김구 역시 암살되고(1949) 6.25전쟁(1950) 때는 양심적 민족주의 세력이 몰락을 거듭했다. 이로써 친일파 청산을 통한 국가 정체성의 확립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유럽의 역사 청산과 다른 구조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 p31~32

 

 

  고대사는 영토 크기만을 다루는 분과가 아니다. 광개토대왕, 장수왕, 진흥왕 등이 땅을 얼마나 넓혔는가도 관심사이겠지만 당시 집권 체제의 성격이 어떠했는가에 대해 학계는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생활사와 문화사적으로 다양하게 고대사에 접근하면서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하는 것이 고대사 분과의 역할이다. (…)

  재야 사학계는 기존 사학계가 식민 사관에 물들어 있고, 한민족의 역사를 축소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비슷비슷한 내용의 책을 서점에 마구 유통시키며 여론전에 집중한다. (…)

  여하간 학문적 결론과 상관없이 재야 사학계의 행테에는 문제가 있다. 그들은 언제나 '찬란한 고대'에 집착한다. 극우적이라고 말하기도 뭐할 정도로 찬란함 자체를 숭배한다. 안타깝게도 고대사회는 영토 개념이 현재처럼 명확하지 않았다. 어디까지가 우리의 영토라는 개념은 근대적인 관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내 학계뿐 아니라 러시아 학계의 발해 연구나 일본 학계의 연구, 중국 학계의 연구가 뚜렷한 성과물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주장이 인정을 받으려면 상당한 학문적 동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시각은 기분은 좋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극히 편향적이다. 결국 우리가 잘났다고 줒아하는 것인데 이보다 더한 열등감의 발현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자칫하면 파시즘이나 국수주의에 빠져버릴 세계관인데다 사관이라고 말하기에는 수준이 너무 낮고 연구 성과 역시 여전히 부실하다. - p54~55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역사 논쟁의 근원지는 역사, 역사학, 역사교육이 아니다. '정서가 쟁점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특정한 감정이 사회를 휘감고 있고 모든 것을 감정의 잣대로 판단하고 있다. 이성이나 논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처음과 끝이 없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고, 무한정 반복할 수 있다. 정서만이 본질일 뿐, 다른 모든 것은 외피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 정서, 이 감정의 실체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반공주의'. 너무나 익숙하고 너무나 많이 사용되는 단어다. 빨갱이, 종북, 레드콤플렉스, 그냥 반공. 글자만 다를 뿐, 결국 같은 정서이고 이 정서는 여전히, 언제나, 모든 상황에서 유효하다.

 

 

쿠데타라는 말은 나폴레옹의 브뤼메르(Brumaire) 쿠데타에서 연원한다. 자코뱅의 급진 정치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를 무너뜨리기 위해 보수파는 나폴레옹의 군사력을 이용하여 총재정부를 수립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폴레옹은 본인의 군사력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통령정부를 수립한 이후 국민투표를 통해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이것이 근대적, 학문적 용어로서의 쿠데타라면 5.16은 전형적인 군사 쿠데타다. - p163

 

 

  근대화에는 물질적 변화를 뛰어넘는 정신적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인권선언이 없었다면 프랑스혁명은 혁명이 아니라 민란이나 반란에 불과했을 것이다. 영국 명예혁명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며 미국 독립혁명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전통적 세계관, 즉 성리학에 기초하여 왕조적 이상을 추구하는 문화적 태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일제는 조선왕조의 유산을 적극 활용했다. 왕조는 멸망했어도 고종과 순종은 천수를 누렸고, 영친왕은 일본인 공주와 혼인하고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도 내선일체의 상징처럼 활동했다. 사실 당시의 일본은 완전한 의미의 입헌군주국이나 민주공화제같이 완성된 근대화의 성과를 이루어재니 못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만든 제국헌법은 여전히 기본권을 제한하고 천황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구조였다. 자유민권운동이나 다이쇼 데모크라시도 서구 민주주의의 발전과는 본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여하간 일제는 조선을 지배하는 방식에서도, 이후 만주국을 세우고 운영하는 방식에서도 전통적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가 만주국의 황제가 되는 것이 아닌가.

  독립운동가들의 행보는 전혀 달랐다. 결정적으로는 신해혁명, 러시아혁명, 독일혁명 등의 영향을 받으며 전통적 세계관이 아닌 근대적인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수용하여 새로운 형태의 국민주권국가를 설계했다. 이미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대한제국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일어났고, 통제사 등의 단체들이 조직되어 신해혁명의 결과를 고스란히 이어받으려는 노력들을 했다. 그런 노력이 10년간 누적되어 3.1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국내건 국외건 모두가 조선왕조의 부활이 아닌 민주공화제에 기초한 근대국가 수립을 도모했다. (…)

  그렇다면 근대화의 가장 본질적 측면인 정신적 변화와 제도적 변화는 일본에 의해서가 아니라 독립운동의 결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뉴라이트 학자들은 근대화를 이야기하지만 근대화가 가진 다양한 측면에 대한 성찰이 없다. 그들은 근대화를 물질적 변화나 경제성장 정도로 이해할 뿐이다. 현대사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만 근대사에서부터 치열하게 발전해온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 p254

 

 

생각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 사고를 보다 다양하게 하면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 힘'이다. 뉴라이트 진영은 근본적으로 그 힘이 없다. - p356.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