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책장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Rachel Lee 2015. 7. 12. 21:27


무의미의 축제

저자
밀란 쿤데라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4-07-2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보잘것없는 것을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내가 세상에 대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가진 이미지는 주로 두 가지로 귀결된다. 정말로 재미 있는 것이어서 한 번쯤 살아볼 가치가 있다거나,

또는 이 모든 일들은 결국엔 끝나기 마련이며 그래서 허무하다는 것.

이렇게 극단적인 두 견해가 결코 공존하는 법이란 없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번갈아가며 날 찾아온다.

그리고 <무의미의 축제> 를 최초로 서점의 신간코너에서 읽기 시작했을 땐, 아마 인생 회의주의가 조금 더 지배적이 었을 것이다.

그렇게 읽다만 채로 1년 여의 시간이 흐르고, 또 한번 '무의미'라는 단어에 홀려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무의미하다 라는 말은 철저히 주관적인 형용어이다. 나에겐 아주 하찮은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세상 전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오늘 나에게 무의미 했던 것일지라도, 내일은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의미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너무나도 변화무쌍하니까. 그렇다면 나는 아마도 '무의미' 라는 것을 좋아라 하겠다.

 

기분이 조금 나쁜 지금 이 순간에 드는 생각은

그냥.

 

춤추며 사는 생은 어떠한 상황, 시간, 조건 하에서도 의미있다. 가치있다. 가치롭다.

 

 

 

 

  "뛰어나 봐야 아무 쓸데없다는 거지, 그래, 알겠다."

  "쓸데없기만 한 게 아니야. 해롭다니까. 뛰어난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려고 할 때면 그 여자는 경쟁 관계에 들어갔다고 느끼게 돼. 자기도 뛰어나야만 할 것 같거든. 버티지 않고 바로 자기를 내주면 안 될 것 같은 거지. 그런데 그냥 보잘것없다는 건 여자를 자유롭게 해 줘. 조심하지 않아도 되게 해 주는 거야. 재치 있어야 할 필요도 전혀 없어. 여자가 마음을 탁 놓게 만들고, 그러니 접근이 더 쉬워지지." -p25

 

 

  "사과를 하는 건 자기 잘못이라고 밝히는 거라고. 그리고 자기 잘못이라고 밝힌다는 건 상대방이 너한테 계속 욕을 퍼붓고 네가 죽을 때까지 만천하에 너를 고발하라고 부추기는 거야. 이게 바로 먼저 사과하는 것의 치명적인 결과야."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p58

 

 

모두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자 스탈린이 말한다. "이걸 몽상의 끝이라고 하지. 모든 꿈은 언젠가는 끝납니다. 피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측할 수도 없어요. 이 무지몽매한 자들, 그걸 모른단 말이오?" -p94

 

 

"샤를하고 너는, 사교계 칵테일파티에서 불쌍하게 속물들 시중이나 드는 동안 좀 재미있게 해 보려고 웃기는 파키스탄 말을 만들어 냈어. 뭔가 신비하게 만드는 즐거움이 너희에게 보호막이 돼 주었을 거야. 하긴 그게 우리 모두의 작전이기도 했지.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하지만 내 눈에는 우리 장난이 힘을 잃었다는 게 보인다. 너는 기를 쓰고 파키스탄어를 해서 흥을 돋우려 하고 있어. 그래 봐야 안 돼." -p96

 

 

"하늘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구나. 아름다운 나의 삶이 전보다 더 아름다우리라고. 삶은 죽음보다 강한 것, 삶은 바로 죽음을 먹고 사는 법이니!" -p100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이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바로 당신 입으로, 완벽한, 그리고 전혀 쓸모없는 공연…… 이유도 모른 채 까르르 웃는 아이들…… 아름답지 않나요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들이마셔 봐요, 다르델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무의미를 들이마셔 봐요. 그것은 지혜의 열쇠이고, 좋은 기분의 열쇠이며……." -p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