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신경숙 지음
신경숙 작가님의 책들은 우선 믿고본다.
<엄마를 부탁해>를 통해 본격적으로 교과서 이외의 신경숙 작가님의 책을 접하면서, 뒤이어 읽은 <어디선가 나를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작가님의 장편소설들을 읽었다면, 이번 책에서는 무겁지 않고 담백한, 그럼에도 울림이 있는 단편들을 여러편 접할 수 있었다.
단편이나 장편이나 저마다의 장점이 있겠지만, 장편소설은 한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끊기가 힘든 데에 반해,
단편은 그래도 하나의 이야기가 종결되면, 잠시나마 다른일을 할 틈을 찾을 수 있다. (다른 해야할 일들이 있는데도, 이야기에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놓기가 힘들어지니, 해야할일이 있을 때면 나는 단편소설집을 찾게된다.)
내가 당시 스크랩 해놓은 구절들을 보니 <바닷가 우체국에서> 에서 모두 해놓았네. 아무래도 이 글이 가장 마음에 들었나보다.
책을 구성하고 있는 짤막한 이야기들은 모두 가볍게 웃음 지을 수 있는 내용의 것들이었다.
큰 감정의 소모가 없이도 그저 훈훈하게 달아오르게 하는 그 어떤 힘이 이 이야기들엔 있는 것 같다.
오래 잊고 지냈던 사람들의 얼굴이 바람에 실려와 잠시 머무는 때도 있지. 그렇게 계속 걷다보면 이젠 생각이 과거를 지나 현재를 지나 미래로 뻗어나가지. 걷는다는 일은 온몸을 사용하는 일이잖아. 이곳에서 걷기 시작하면서 걷는 일은 운동이 아니라 휴식이 아니라 미래로 한 발짝 나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 어떤 일에 끝이란 없다는 생각도 들어. 내가 내 태생지를 떠나왔지만 그 주소를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가 이 현재에 무엇인가를 자꾸 그곳으로 보내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 그런 것 같아.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듯이 모든 일은 끝없이 계속되고 있어. 작별도 끄이 아니고 결혼도 끝이 아니고 죽음도 끝이 아닌 거지. 생은 계속 되는 거지. 제어할 수 없이 복잡하게 얽힌 채 다양하고 무질서한 모습으로. 이따금 이런 시간,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이 바닷가 우체국에서 잠깐 머무는 이런 시간, 이렇게 홀로 남은 시간 속에서야 그 계속되는 생을 지켜보는 마음과 조우하게 되는 거지. -p202
이 엽서들은 어디로 부쳐야 할까. 고민하는데 콘도 관리인이 엽서를 수거하러 바닷가 우체국으로 올라왔어. 그가 수거함을 여는대 백여 통도 넘는 엽서가 쏟아지는군. 모두 어디로 이 많은 엽서들을 보낼까? 나는 내가 쓴 엽서 앞에다가 1,2,3,4 …… 번호만 붙여 내 빈집 주소를 써서 백여 통이 넘는 엽서들 위에 얹어놓고 있어.
나보다도 먼저 내 집에 도착해 있겠군. -p204